성소 담당 수녀님의 귓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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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느님, 지금 저를 부르십니까?

    주님의 부르심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가신 때처럼,
    베드로가 주님을 처음 만나던 때처럼, 세리 마태오가 주님을 따르게 되던 바로
    그 날처럼 뜻밖에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계획이나 뜻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때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마태 4,19) 하고 부르십니다. 많은 성소자들이
    “주님, 정말 지금입니까?” 하며 지금 맡은 것도 있고, 집에 부모님을 모실 사람도
    없고, 아직 주님을 따를 형편이 안된다고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배 위에서 부르심을 듣고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22)고 성경은 전합니다. 쉽지 않은 결단과 용기,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를 요구합니다. 성모님은 처녀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초자연적인
    요구를 이성을 초월한 믿음으로 응답해야 하셨고, 약혼한 요셉과의 관계, 처녀가
    임신하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통상적인 사회 관습, 불확실한 앞날의 걱정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부당하게 여겨지는 자신의 비천함 그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응답하시며 온 인류의 구원을 여는 사랑의 “Yes”를
    이루십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그 분께서 택하셨고, 그 분께서 태초부터
    예비하시고 사랑으로 이끄시는 부르심입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답니다. (창세 22,8) 우리 하느님은 그르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느님은
    자비의 근원이시고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께 주셨던 그 은총을 제게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 보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함께 기도합니다.
  2. 어디가 제 집입니까?

    수녀원이 참 많지요? 주님을 따르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건지 무척
    고민스럽고 힘이 듭니다. 마음이 끌리는 수녀원이 있는데 과연 저기가 내 집일까?
    무엇을 따져보고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르고 혼란스러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자매님을 부르고 계신 것이
    확실하다면 이미 자매님의 자리도 그 분께서 이미 은총으로 마련해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제, 수도 성소는 갑자기 어느 한 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이끌림에
    의해서 응답하는 우리측의 일시적 결단이 아닙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2티모 1,9)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열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홀로 산에 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루카 6,12)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뜻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바르게 응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습니다. 기도 방법을 바꾸어 볼까요? “제가 가장 좋은 집을 찾아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주님께서 예비하신 저의 자리를 알려 주시고 제가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시오.” 라고. 또 한가지 중요한 귓뜸은 성령께 많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코린 2, 10-11)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마음속까지도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 8, 26-27)
    성령님께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제게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고, 또 저와 함께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십시오. 좋으신 주님의 뜻이 자매님 안에 이루어지기를 저희 수녀님들도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3. 저도 수녀님이 될 수 있나요?

    참으로 겸손한 질문이 아닐 수 없는데요. 본인은 무지 답답하고 힘들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주님을 따르기에 부당하고 나 자신을 봤을 때는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것.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열쇠를 받고 열두 사도들 중에 으뜸인 수위권을 받은 베드로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잠깐 기억해 볼까요?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아 뵙는 순간, 그 분의 무릎앞에 엎드려 자신의 부당함을 고백하고
    오히려 그 분이 자신에게서 떠나 주십사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주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뽑으시는 조건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많이 다름을 성경 전체에서 보게 됩니다.
    지식이 있는 이도, 말을 잘 하는 이도, 재주가 있는 이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은 겉모습을
    보고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 하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주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게 되는 나약함을 지닌 그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서는 받아 주십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코린 4,7)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통해 주님의 권능이
    완전히 드러나고 영광 받으시게 된답니다. (2코린 12,9) 또한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당신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
  4. 이런 수녀님이 되고 싶은데, 어느 수녀원이 가장 좋죠?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임에 틀림없고,
    내 일생을 이 한 가지에 몸 바친다는 점에 있어서는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가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소,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은 절대 직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의
    재능이나 자질, 능력, 특기나 취미에 맞추어 거기에 선호도를 두고 수녀회를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내 재능을 그 분야에 카리스마와 사도직을 두고 활동하는 수도회에 맞추어
    써 주신다면 기꺼이 거기에 응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수녀회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내 자리에 응답한다는 마음가짐은 항시 우선되어야겠습니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 55,9)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고, 나보다 더 모두에게 유익한 길을 아시는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고
    그 분께 맡겨드리는 자세를 가져봄이 어떨까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자매님 안에도 그분의 뜻이 완성되기를 기도합니다.
  5. 수녀님은 기도만 하나요?

    하하. 정답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성당에 앉아 기도만 하지는 않는답니다.
    오히려 남자들이 주로 하는 일도 수녀님들만 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해결하고 사도직 안에서
    맡겨지는 모든 주님의 부르심과 요청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응답하며 생활한답니다. 다만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콜로 3,17) 말씀처럼 내 모든 기도와 활동, 말과 행동이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드리는
    찬미와 기도가 되도록 지향하며 봉헌해 드리는 봉헌생활, 축성생활을 살고 있습니다. 저희 수녀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관상과 활동을 통합하여 살아가는 반관상의 생활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예요. 수녀님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관상 수도회에 버금가는 만큼 모든 일에
    앞서 기도하고 주님 안에 잠심하여 생활하는 것을 강조하는 반면 성령께서 이끄시는 모든 활동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활동양식을 동시에 살아나가는 신비가 드러납니다.
  6. 수녀님이 되어 주님을 따르고 싶은데 이 것 한 가지가 걸려요.

    부자 청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떤 사람이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여러 계명들을 되새겨주시자,
    “스승님, 그런 것들을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고 이르십니다. 그러자 그는 이 말씀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그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해 줍니다. (마르 10, 17-22) 하느님께 다
    내어 드릴 수 있는데 이 것 한가지만은 힘든 것이 있습니다. 내게는 무엇이 걸립니까?
    그래서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 7, 13-14)고 말씀해 주셨나 봅니다. 이 것 한 가지를 생각해 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지로 가장 귀한 것을 내 주셨습니다. 바로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6)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1요한 4,19)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11)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귀한 것을 사랑의 표시로 내어드립니다.
    다만 성소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다른 어떤 무엇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듣고 응답할 수 있는 큰 사랑과 용기를 청해야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 5-7)
  7. 저는 평생 순명은 못 할 것 같아요.

    우리 수녀회 회헌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회헌 제 20조 3항] 순명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가장 바르고 확실한 길이며 이 순명은 덕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은총이고 이것을 이해함도 은총이며 생활로 드러내는 것은 더욱 더 큰 은총이다.
    자신의 의지와 뜻을 내어 놓고 하느님의 뜻만을 찾고 순응하며 하나되어 살아가는 일생을
    봉헌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삼위의 사랑 안에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놓으시며 성부께 순명하신 그분의 자녀적 순명과 구원 의지에 일치되는 빠스카의 신비를
    매순간 살아내는 가치입니다. 우리가 이 가치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더욱더 이 순명의 덕을
    원하고 완성시키기를 바라겠지만, 약하고 부족한 우리 자신의 모습에 안주하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성실하신 사랑에 의지하여 덕으로 나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2티모 2,13)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1테살 5,23-24)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가 없습니다. 내가
    넘어지면 그 분께서 반드시 사랑의 손길로 안아 일으켜 주시고 다시금 시작하도록 도와주시고
    당신과 하나 되는 그 날까지 끊임없는 성실한 사랑으로 날 지켜주시고 함께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 주님은 그러한 분이십니다.
  8. 어떤 사람이 수녀님이 될 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수녀님이 되려는 사람은 거룩해야하고, 남다르고, 신앙심이 깊고,
    덕행이 뛰어난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들 생각합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의 부르심을
    받았던 처지를 생각해 볼까요? 율법과 성경에 능통했던 학자나 교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직업은 주로 어부들이었고, 무식하고 배운 것이 없어 이들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사도 4,13)라고 성경은 전합니다.
    마태오는 그냥 평범한 사람도 아니고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민족의 원수로 여겨졌던
    세리가 직업이었습니다. 이 마태오 때문에 예수님께서 욕을 들으십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루카 5, 30-32) 바오로 사도는 어떠합니까? 그리스도교를
    거부하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고, 박해하고 잡아 죽이는 일에 동조한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예비하신 역사를 이루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꼐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코린 15,10)
    성소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2티모 1,9)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만 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 28-30)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
  9. 수녀님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제나 수도자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를 받아 거기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그러니 내 안에 일어나는 갈망이 하느님의 부르심인지 식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주님께서 어느 집으로 나를 부르시는지 자기 성소에 맞는 수녀회를 찾는 것도 필요합니다.
    기도 안에서 확신이 든다면 각 수녀회 성소 담당 수녀님이 계시니 식별을 위한 성소 상담을
    받아 보실 수 있고, 성소 모임이나 피정을 통해서도 성소 식별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소를 식별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성소를 밝혀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수녀회에서는 성경 통독 피정을 열고 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이 피정 안에서 자신의
    성소를 확인하고 사제, 수도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10. 성소모임은 어떤 것인가요?

    성소모임은 성소자(수도자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고 피정하는
    모임으로 각 수도회의 영성과 카리스마에 따른 기도와 프로그램으로 성소자들에게 영신적
    도움을 주고 지속적인 기도와 상담을 통해 각 사람의 성소를 식별하게 되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에 참석한다고 무조건 수녀님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편안한 마음으로 누구나
    참석하실 수 있구요. 성소자들이 수녀님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은 영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답니다. 더 나아가 수녀회의 영성과 카리스마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고 배워가면서 주님의 때에 주님 원하시는 바대로 사랑의 응답을 드리는데
    더욱 깨어 있는 은총의 준비기간을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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